Puchon International Fantastic Film Festival 196

매해 판타스틱 장르의 지형 안에서 중요한 작업을 해 온 작가들을 조망해 온 판타스틱 감독백서는 올해 호러 장르의 대표적인 아이콘인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진 거장 감독들을 주목한다. 동유럽의 전설에서 고딕 소설, 그리고 초창기 영화로 이어져 이후 수없는 변주와 재탄생을 거듭해 온 뱀파이어는 단순한 흡혈귀를 넘어 다양한 사회문화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매력적인 존재다. 흡혈이라는 신체 훼손과 카니발리즘이라는 금기의 영역과 상식의 규범이 지배하는 인간 사회의 질서를 위태롭게 오가는 뱀파이어는 경계라는 영역과 그 역동적 에너지에 매료된 거장 감독들에게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영화적 소재가 되어 왔다. 유럽영화의 기수 로만 폴란스키의 <박쥐성의 무도회>는 드라큘라의 고향인 트란실베니아를 배경으로 기존의 드라큘라 이야기에 코믹한 터치를 가미한 작품. 해리 쿠멜의 <어둠의 딸들>은 70년대 섹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주된 소재이기도 했던 소위 ‘레즈비언 뱀파이어’ 계열의 영화로 뱀파이어를 성애적 맥락에서 재해석하는 작품이다. <지난해 마리엥바드>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누벨 바그의 여신 델핀 세릭의 모습이 새롭다. 미국 B급 호러의 거장 토브 후퍼의 <뱀파이어>와 할리웃의 장인 조엘 슈마허의 <로스트 보이>는 뱀파이어의 존재를 각각 SF와 성장영화라는 또 다른 틀에 접목시키면서 80년대를 풍미했던 대표작. 마지막으로 올해 칸 영화제 최고 화제작 중 하나였던 박찬욱의 <박쥐> 역시 뱀파이어라는 존재를 경유한 그의 작가적 고민이 기묘한 화학반응을 자아내는 문제작이다. (박진형)